자연과 품앗이한 예술무대…제17회 품앗이공연예술축제 30일 개막내달 3일까지 화성시 민들레연극마을·동탄복합문화센터서 개최
무대설치 대신 자연을 무대로 '지속가능' 축제화 극장형 공연선 도시·농촌 '장소 품앗이'로 연결
연극통해 우리말 모본 찾는 '방정환 말맛극장' 등 전세대 함께 하는 사회 통합형 예술 경험 만끽
[동아경제신문=유경석 기자] 공연예술계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됐다. 창작자와 운영 주체들은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작업을 돌아보고, 새로운 태도를 모색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축제가 ESG를 구호에 그칠 뿐, 실제 운영 방식에 녹여내기란 쉽지 않다. 그 가운데, 17회를 맞이한 품앗이공연예술축제는 보기 드물게 ESG의 가치를 축제 전 과정에 깊게 심고 있다.
자연을 가꾸는 공연장, 민들레연극마을
경기도 화성시 이화리에 자리한 민들레연극마을은 자연과 예술의 이상적인 공존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축제 때마다 새로운 무대를 짓지 않고, 기존의 자연 환경을 조율하고 가꾸며 무대를 만든다. 인공조명 대신 노을을 기다리고, 철거보다는 다듬기를 택한다.
예술감독 송인현은 “요즘 녹색축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품앗이공연예술축제는 처음부터 자연친화적인 방식을 이어왔어요. 무대를 세웠다 부수는 게 아니라, 매년 가꾸는 방법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죠! 그래서 석양 아래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라며, 이 축제가 처음부터 ESG의 가치를 실천해온 예술현장이었음을 강조한다.
민들레연극마을 곳곳에는 자연 속에 녹아든 다양한 형태의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장소의 성격과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8월 2일 저녁, 테라스극장에서는 서울드럼페스티벌 예술감독 장재효가 연주하는 타악 공연 '바람 다스름'이 석양빛을 조명삼아 펼쳐진다. 같은 날, 배우 박정자가 별도의 무대 장치 없이 행주치마를 걸어두고 방정환의 작품 '성냥팔이 소녀'와 '어린이 찬미'를 낭독한다.
사랑채극장은 약 70석 규모의 실내극장이다. 극장 앞 등나무 가지 덩굴이 지붕을 덮어 극장 안이 시원하다. 이곳에서 벨기에 초청작 '비처럼'이 공연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연극이 되는 독창적인 이 작품은 암전과 섬세한 조명이 중요한데, 이 극장에선 자연광과 커튼, 창문까지도 조명의 일부가 된다. 한여름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에어컨을 살짝 켜는 것도 이 공간의 지속가능한 운영 방식을 보여준다.
작은 규모의 야외무대인 넝쿨극장에서는 자연음악 '풀피리 놀자'가 진행된다. 곡선형 구조의 무대 덕분에 배우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순간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곳에서 자연음악, 풀피리 연주를 감상하고 배운다.
연극마을의 중심인 잔디마당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축제의 광장이다. 8월 3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난타 공연이 열리고, 이어서 지난해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던 현대서커스 '폴로세움'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야외 공연의 매력을 발산한다. 축제가 끝나면 찐 감자를 관객들과 나누며,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어울리는 잔치가 펼쳐진다. 이 모든 과정은 공동체가 어우러지고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이자, 예술을 통한 ‘사회적 ESG’의 실천이다.
농촌과 도시를 잇는, 장소 품앗이
2025년 품앗이공연축제의 또 다른 특징은 ‘장소 품앗이’다. 섬세한 조명과 음향 설비가 필요한 극장형 공연을 위해 축제는 동탄복합문화센터로 무대를 넓혔다. 도시와 농촌에서 자연예술과 극장예술을 품앗이하듯 나누는 방식이다.
동탄에서는 공간 특성에 맞춰 다채로운 공연들이 펼쳐진다. 생후 10~24개월 아기를 위한 베이비드라마 '소리나무', 어린이 배우가 들려주는 자연과 생명 이야기 '라몰의 땅: 땅의 아이', 관객의 상상으로 완성되는 참여형 스토리텔링극 '생각을 모으는 사람', 그리고 제33회 ‘서울어린이연극상’ 대상 수상작 '코 잃은 코끼리 코바' 등 극장이라는 공간이 지닌 밀도와 집중력을 최대한 활용한 작품들이 기다린다.
'비처럼'은 동탄과 민들레연극마을, 두 공간에서 모두 공연된다. 동일한 작품을 도시의 극장과 자연 속 극장에서 각각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같은 공연을 서로 다른 감각으로 경험해보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된다.
언어의 본을 그리는 방정환의 말맛극장
품앗이공연예술축제의 중심에는 ‘어린이’가 있다. 특히 올해는 축제 속의 작은 축제, ‘방정환의 말맛극장’을 통해 방정환의 어린이 정신과 말맛을 살린 공연 3편을 선보인다. 방정환의 말맛극장 공모 선정작 '하루샤쓰',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극 대본을 탈춤극으로 새롭게 구성한 '노래주머니', 배우 박정자의 낭독공연 '박정자 선생님의 말맛'이 그것. 박정자는 방정환의 대표작 '성냥팔이 소녀'와 '어린이 찬미'를 그녀만의 깊고 따뜻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예술감독 송인현은 “우리말의 모본이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연극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연극이 우리말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맛극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아시테지(ASSITEJ KOREA)에서 ‘방정환의 말:맛 창작소’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온 이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품앗이공연예술축제 안에서 ‘방정환의 말맛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본격화된다. 공연예술을 통해 언어 문화를 보존하고, 그 사회적 가치를 확장하려는 이 작업은, ESG에서 말하는 ‘사회적 책임(Social)’을 공연예술 현장에서 실천하려는 구체적 시도이기도 하다.
어린이가 중심인 가족 축제
품앗이공연예술축제는 기저귀 찬 아기부터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예술 축제다. 연극, 음악, 무용, 거리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하루 2~3편씩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공연 한 편만 보고 서둘러 돌아가기보다 하루 종일 천천히 머물며 여러 무대를 만나보길 추천한다. 축제의 진면목은 그렇게 천천히 머무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민들레연극마을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만나보는 ‘지속가능한 세계문화체험’, 펌프질과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보는 ‘우물체험’,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올라 배우가 되어보는 ‘나도 배우다!’ 같은 참여형 활동이 진행된다. 동탄복합문화센터에서는 방정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텐트도서관’이 운영된다. 공연 사이사이 잠시 멈춰 머무는 이 시간들이,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8월 2일과 3일 민들레연극마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대부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풀피리 놀자', '놀GO놀GO~!' 등 일부 무료공연은 네이버 사전 예매가 필수이며, 다른 공연들 역시 선착순 입장이므로 여유 있게 도착하는 것이 좋다.
삶의 속도를 다시 보는 축제
공연예술이 세상과 어떻게 건강하게 연결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일상 속에서 찾고 싶다면, 품앗이공연예술축제를 눈여겨볼 만하다. 자연을 가꾸며 마을과 함께 축제를 만들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연을 고민하는 이 축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우리 삶 가까이에서 풀어 보여준다. 올여름, 아이와 함께 공연을 보고, 잠시 천천히 걸으며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무언가를 빨리 보고, 쉽게 소비하고, 금세 잊어버리는 시대에 품앗이공연예술축제는 우리에게 ‘오래 머무는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자연 속에서 지역 공동체와 예술가들이 함께 천천히 만들어가는 이 축제의 방식이 지금 우리에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축제는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도시와 농촌, 두 곳에서 함께 펼쳐진다. 동탄복합문화센터에서는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민들레연극마을에서는 8월 2일부터 3일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두 곳 모두 수도권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 거리로,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부담 없고 당일 관람은 물론, 하루 이틀 머물며 체류형 일정으로 즐기기에도 좋다.
관람 요금은 전석 2만원이며, 일부 무료공연과 다양한 할인 혜택도 마련돼 있다.
자세한 공연 정보와 예매는 네이버에서 ‘품앗이공연예술축제’를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으며, 문의는 민들레연극마을(031-358-7587)로 하면 된다. <저작권자 ⓒ 동아경제신문 & dae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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