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브랜딩의 시대, 이름보다 관계가 남는다[전문가 기고 / 마케팅의 전환점 ①] 김민서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 경영학 박사)
기술의 시대, 브랜드는 왜 다시 ‘진심’을 묻나
오늘날의 마케팅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전환점에 서 있다. 기술은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인공지능은 취향의 패턴을 정교하게 예측한다. 브랜드는 몇 초 만에 전 세계로 메시지를 전송하고 마케팅 캠페인은 국경을 넘어 확산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정교해진 지금 소비자는 기술보다는 태도를, 효율보다 의미를 찾는다. 마케팅의 언어는 복잡해졌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여전히 단순하다.
“이 브랜드는 나를 이해하고 있는가?”
과거의 브랜딩이 ‘기억되는 이름’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공유되는 관계’를 설계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필자가 말하는 ‘포스트 브랜딩(Post-Branding)’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뜻한다. 브랜드는 더 이상 로고나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결을 통해 의미를 얻는다. 제품을 판매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매개로 소비자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데이터는 읽어도 마음은 읽지 못한다
Capital One Shopping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팝업 리테일 시장은 연간 약 800억 달러 규모이며 2025년까지 95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팝업스토어가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가 소비자와 직접 경험의 접점을 설계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디지털 피로감으로 인한 ‘경험의 결핍’이 있다. 온라인 중심의 소통에 피로를 느낀 소비자들이 다시 오프라인 체험을 통해 브랜드와 관계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소비자는 품질보다 가치관을, 기능보다 존재의 이유를 산다. ‘무엇을 샀는가’보다 ‘왜 샀는가’가 중요해졌고 소비는 곧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 되었다. 브랜드를 소유하기보다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안정감과 자존감을 얻는다. 오늘날 브랜드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정서적 공감에 있다. 시장의 성패는 얼마나 널리 퍼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연결되었는가로 결정된다.
팬데믹은 이 변화를 가속화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자 사람들은 ‘만질 수 없는 브랜드’에 피로를 느꼈고 브랜드는 다시 오프라인의 감각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성수동의 팝업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만남의 결핍’을 메우려는 반응이었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을 소유하기보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려 한다. 브랜드의 정체성은 이미지가 아니라 체험으로 남겨진 기억의 온도로 결정된다. 이 변화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세대별 경제적 환경과 사회적 경험이 다르기에 소비 패턴 역시 달라진다. 특히 20대는 특정 브랜드에 정착하기 전 다양한 브랜드를 탐색하며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시험한다. Z세대는 그중에서도 독특하다. 노골적인 광고를 거부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브랜드에는 주저 없이 반응한다. 그들에게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다. 나이키를 신는 사람은 ‘한계를 넘는 자신’을, 언더아머는 ‘언더독의 끈기’를, 뉴발란스는 ‘꾸준함과 진정성’을, 리복은 ‘되찾는 나 자신’을 입는다. 소비자는 결국 신발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은 이야기를 구매한다.
이처럼 브랜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Z세대의 태도는 산업의 경계를 넘는 협업 트렌드로 확장되고 있다.
Z세대 소비 방식, ‘물건’ 아닌 ‘이야기’
최근의 협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종 산업 간 감정적 연결을 실험하는 새로운 관계의 형식이다. 삼성전자와 매일유업의 ‘아몬드브리즈’ 협업은 기술과 일상이 만나는 지점을 통해 브랜드가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기아자동차와 무신사의 협업은 자동차와 패션처럼 전혀 다른 산업이 ‘경험’이라는 공통 언어로 연결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두 브랜드는 ‘이동의 감성’과 ‘스타일의 자유’를 결합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샤넬 코스메틱스의 체험형 팝업은 상징적이다.
그동안 럭셔리 브랜드는 Z세대를 직접 타깃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여겼지만 샤넬은 경험 중심의 마케팅으로 그 벽을 허물었다.
화려한 이미지 대신 ‘직접 체험’과 ‘감정적 공감’을 앞세워 젋은 세대와 새로운 접점을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판촉이 아니라 브랜드 세계관을 체험으로 전달해 젊은 세대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례였다. 기술과 감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브랜드는 더 이상 기능의 상징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문장을 잊더라도 그 브랜드가 보여준 태도와 진심은 오래 기억한다. 브랜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Buyer’s Black Box’ 이론이 말하듯 소비자는 자신이 왜 특정 브랜드를 선택했는지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감정과 기억, 경험이 얽혀 무의식 속에서 결정이 이뤄진다.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블랙박스’ 속 감정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해석할 수는 없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예측할 수 있지만 ‘왜 샀는가’와 ‘무엇을 느꼈는가’는 인간의 감성으로 이해된다. 나이키의 Just Do It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과 용기를 말하고 애플의 Think Different가 기술을 넘어 사고방식을 찬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메시지는 기술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했기에 세대를 넘어 울림을 남긴다.
이제 글로벌 마케팅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적 공감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나의 슬로건을 전 세계에 동일하게 던지던 시대는 끝났다. 서울의 ‘진심’이 뉴욕에서는 ‘혁신’으로, 도쿄에서는 ‘절제’로 해석될 수 있다. 진정한 글로벌 마케팅은 언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를 번역하는 일이다.
결국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 위에 세워진다. 기술은 진화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마케팅의 마지막 퍼즐이다. AI는 데이터를 예측하지만 진심은 오직 사람이 만든다.
브랜드의 미래는 이름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그것이 바로 ‘포스트 브랜딩(Post-Branding)’의 시대가 말하는 새로운 법칙이다. /김민서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 경영학 박사)
※ 필자는 경영학 박사로 현재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려대학교 및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강의 중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마케팅 석사, Syracuse University에서 경영학 학사를 마쳤다. 삼성물산 근무를 비롯한 산업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심리와 서비스 마케팅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동아경제신문 & dae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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