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안빠지는 투수블록’ 잔혹사…전국 실태조사 ‘도시 물순환 혁신’ 기회로[기고] 최경영 사단법인 한국저영향개발협회 회장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박지원 국회의원이 날카로운 질의를 통해 도심 속 투수블록의 부실 시공과 관리 실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에 국무총리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조달청 등 관계 부처 수장들이 일제히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약속하고 나섰다. 정부 차원에서 투수블록의 납품·시공·관리 전반을 대상으로 전국 전수조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00억 넘는 혈세 투입…정작 ‘물 안빠지는’ 투수블록의 배신
기후변화로 인한 기습적 집중호우와 도심 열섬 현상이 일상화된 오늘날, 도시의 ‘물순환 복원’은 더 이상 단순한 환경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핵심 안전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시를 콘크리트로 덮는 대신 빗물이 땅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저영향개발(LID, Low Impact Development) 기법의 대표적 시설이 바로 ‘투수(透水)블록’이다.
그러나 현장의 실상은 이러한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조달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공공부문의 투수블록 발주 규모는 1,218억 원에 달하며, 불과 2년 만에 44%나 급증했다. 여기에 민간 부문의 생태면적률 제도 강화까지 더해지면서 도심 곳곳에 투수블록이 광범위하게 깔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 이 시설들이 정작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현장 시료 채취 평가 결과, 설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제품조차 납품 성적서상 등급에 턱없이 미달하거나 빗물이 거의 빠지지 않는 실태가 명확히 확인됐다. 이름만 ‘투수’일 뿐, 실제로는 물을 막아서는 막무가내식 부실 제품이 전국의 보도(步道) 위에 무분별하게 깔려 있었던 셈이다.
투수블록 생태계의 5대 부실(不實) 고리로 부실 제품, 부실 수주, 부실 시공, 부실 관리감독, 부실 감사가 꼽힌다.
깔아놓으면 끝? ‘설치’ 중심서 '지속가능한 관리'로 전환
우선 시험성적서상 등급과 실제 시공 제품의 성능이 현저히 괴리되어 있으며, 품질 기준 자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그 결과 저가 투찰과 불공정 조달 관행이 만연하면서,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업체들이 시장에 무분별하게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수 기능의 핵심인 하부 투수층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채, 표준 시공 시방서마저 지켜지지 않는 부실 공사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준공 단계에서 투수성 여부를 확인하는 현장 검사가 형식에 그치고, 준공 이후의 사후 모니터링 체계는 사실상 부재한 실정이다.
아울러 공사가 끝난 뒤에도 평가는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 문제를 걸러낼 실효성 있는 감사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전국 실태조사는 결코 일회성 표면 조사나 몇몇 업체를 적발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행정안전부의 안전 감찰 및 지방계약 점검, 국토교통부의 직할·지방정부 사업 현장 점검, 조달청의 불공정 거래 조사를 결합하여 ‘5대 부실’의 사슬을 끊어내는 고강도 ‘현장 해부’를 단행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소중한 혈세와 국민안전 함께 지키는 길
나아가 이번 조사를 계기로 투수블록에 대한 국가 종합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투수블록은 설치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극(구멍)이 퇴적물로 막히더라도 지속적으로 투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지관리 및 세척 기술을 의무화하고, 준공 후 정기적인 성능 평가를 수행하는 사후관리 법제화가 시급하다.
기후위기 대응과 친환경 도시 조성을 위한 저영향개발(LID) 기술은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부실한 투수블록 하나가 도시 전체의 방재 역량을 저해하고, LID 기술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국저영향개발협회는 정부의 이번 전국 실태조사를 적극 환영하며, 조사 결과가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과 엄정한 후속 대책으로 이어지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헛되이 새지 않고, 도심 침수 예방과 건강한 물순환이라는 본래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현장 중심의 기술 검증과 품질 고도화에 국회 및 정부와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저작권자 ⓒ 동아경제신문 & dae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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