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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名酒를 찾아서] (주)甘紅露 이민형 대표·이기숙 식품명인 부부, 조선시대 3대 명주 ‘甘紅露’
    8가지 한약재를 2번이상 증류…맑고 감미로운 향과 맛의 약용주 ‘감홍로’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北學派) 학자 유득공과 육당 최남선은 저서인 ‘경도잡지(京都雜志)’와 ‘조선상식문답’에서 각각 우리나라 3대 명주(이강고, 죽력고, 감홍로) 중 최고로 꼽은 술이다. ‘감홍로’를 계승·발전시키는데 여념 없는 이기숙 식품명인과 (주)甘紅露 이민형 대표 부부를 만나 보았다. 이민형 대표는 “우리 부부는 실향민 2세다. 장인어른이신 故이경찬 옹은 ‘문배주’와 ‘감홍로’ 등 전통주 제조로 중요무형문화재로 활동해오다가 1993년 돌아가셨다. 고급 전통주는 문화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감홍로의 맥이 끊이지 않기 위해 우리부부가 재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기숙 명인은 “‘감홍로’는 일제시대 이전 맥이 끊긴 것을 아버지께서 집안에 내려오는 제법에 따라 80년만에 재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순한 술로 취급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서 전통제법을 잘 보존해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홍로’는 고려시대 몽고에서 유입된 증류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관서지방에 널리 보급되었다. 감홍로(甘紅露)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 색을, 로(露)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으로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 시각, 후각을 만족시키는 술이다. ‘감홍로’가 고급술이라는 인식은 춘향전의 이별장면에서 ‘질병에 감홍로(겉모양은 투박하나 내용물은 귀하고 아름답다)’라는 표현과, 별주부전에 별주부가 토끼를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가자고 꼬드기는 장면 등 많은 구절에 전해오고 있다. 이민형 대표는 “감홍로는 조선 중기 의학서적 ‘식물본초’에도 언급되었다. 특히 명주들은 약용작용이 강해 상비약으로 복용했다”며 “소주나 보드카, 위스키 등은 도수는 높지만 장을 차갑게 한다. 그러나 감홍로를 마시면 장을 따뜻하게 해 음주 후 숙취가 없고 몸이 따뜻해 컨디션이 좋다”고 말했다. ‘감홍로’의 제조는 길면 1년 4,5개월이 걸릴 정도로 정성으로 제조된다. 우선 조 고두밥을 원료로 밑술을 만들고, 누룩과 물을 섞어 8일간 발효한 다음 두차례 증류한다. 여기에 용안육, 계피, 진피, 방풍(현재 미사용), 정향, 생강, 감초, 지초 등 8가지 한약재를 넣어 한달 이상 침출시킨 후 재증류 한 후, 1년여를 보관·숙성시켜 완성된다. 이기숙 명인은 “우리는 전통방식을 따르기 위해 증류도 감압식 증류가 아닌 화덕식으로 증류하고 있다. 저희가 만드는 기법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술을 빚던 제법과 유사하다”며 제조에 전통과 정성이 담겨있음을 강조했다. 이민형 대표는 “법인을 2005년 설립해 2006년부터 제조하고 있다. ‘감홍로’는 일반 주류 시장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판매에 애로가 있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우리술방)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감홍로’가 다른 전통주와 달리 칵테일로 제조되면서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매출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올해 바텐더협회에서 바텐더 시험을 보는데 ‘감홍로’가 채택되었다. 앞으로 국내 전통 명주들로 구성된 한국형 바를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5천년 역사의 우리문화에 걸맞은 고급 명주들이 있음을 알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감홍로의 맥을 이어가는 이민형(左) 대표와 이기숙 명인. /2014년 8월 21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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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4-08-21
  • [명장을 찾아서] 무형문화재(사기장) 박상진 선생, '분청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죠'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 속에 섬세한 예술성 넘쳐…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 등재 지난 2011년 조선시대 백자도요지의 중심지인 경기도 광주시. 이곳에서 40여년 가까지 흙의 오묘함에 빠져 도자기술을 연마해온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분청사기장)로 지정받은 박상진 선생(現 개천요 대표). 그는 14세 때인 1971년 당대 백자의 명가로 이름을 떨쳤던 故 지순택 명장의 고려도요(현 지순택요)에 입문했다. 이후 1974년 광주왕실도자기 초대 명장인 박부원 선생의 도원요에서 분청사기 기술을 배우며 분청사기의 멋에 흠뻑 빠져 30여년간 분청과 함께 숨쉬고 있다. 박상진 선생은 “처음에는 백자·청자 모두 다뤄봤고 누구 못지않은 인고의 노력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분청사기였다. 청자나 백자는 겉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인데 분청은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분청사기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 속에 질서를 갖추는 독특한 멋이 있어 나와 딱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분청은 정확하게 ‘이 색이다’라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색깔’을 나타내야 한다. 그래서 제일 쉽게 만들어지는 게 분청이고 또 가장 어렵게 만들어지는 게 분청이다. 또한 분청은 대범함, 강함도 있지만 굉장히 섬세한 맛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거칠지만 그 안에는 여백과 아름다움이 내포돼있다”고 말했다. 분청사기는 청자나 백자에서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상감기법, 인화기법, 박지기법, 음각기법, 철화기법, 귀얄기법, 담금 기법 등 다양한 꾸밈기법을 통해 제작된다. 이러한 기법을 이용해 박 선생은 태토(흙)의 본질인 부드러움과 거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범함과 때로는 생략하거나 과장하여 변형시키는 등 변화무쌍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성을 드러낸다. 박 선생에게는 생활도자기와 작품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도자기의 본래 목적이 사람이 편하게 살기위해 만들어 진 과학이고 도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에는 도자기가 그릇으로 사용됐다면 요즈음은 인테리어 작품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디자인을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집안 전체와의 조화를 위해서는 화려함보다는 어울리는 문양과 형식으로 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분청사기는 시대성을 반영한다는 그는 최근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하기 위해 흙 이외의 다른 소재를 첨가하는 세라믹 도자기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외국 것을 모방하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이 탄생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기본을 중시하는 박상진 선생은 개인전을 열 때 옛 모습을 똑같이 재현한 작품을 몇 점 꼭 출품한다. 다만 이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느낌의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작품들도 창작해 낸다. 따라서 동아공예대전(1993) 대상인 ‘목단문발’ 外 다수의 수상작과 그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보이는 느낌과 질감은 한국적인 특성이 잘 간직되어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박진감이 넘친다. 박 선생은 분청사기의 명맥을 잇는데 그치지 않고 계승발전을 위해 최근 ‘광주 숯가마골’에 ‘작업장 전수관’을 신축해 후진양성에도 힘 쏟고 있다. 4시간짜리 특강 준비를 위해 한 달을 투자할 정도로 이론적 정립과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다만 문화재청의 지원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실질적인 후진양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한다. 그는 현재 내년 하반기에 좀 더 발전한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할 계획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2014년 1월 7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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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07
  • [장인을 찾아서] 봄바니에 장준영 대표, 정통 수제 바느질 魂 담긴 양복 명가
    차별화된 체촌 시스템으로 창조적인 '옷' 예술의 혼 담아 “기성복이 시장을 점령하고 로드샵에서 저가양복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다. 또 직장에서도 자율 복장으로 근무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맞춤양복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이러한 가운데 발군의 맞춤양복 제조 기술과 서비스로 명맥 유지를 넘어 맞춤양복의 저변확대를 이끌고 있는 양복장인이 있어 주목된다. 봄바니에 장준영 대표(사진)가 그 주인공. 장준영 대표는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고, 개성이나 직업에 따라 어울리는 디자인도 천차만별이어서 기성복으로는 이를 충족할 수 없다. 맞춤양복을 찾는 손님들은 백화점에서 체형에 맞는 사이즈를 찾을 수 없어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FIT한 옷을 찾는 진짜 옷을 잘 입는 감각을 지닌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고객들은 직접 인터넷·모바일 등을 통해 맞춤양복을 잘 만드는 전문점을 찾아 방문하기 때문에 주문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장 대표는 이러한 고객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명품 맞춤양복 제조에 43년 외길을 걸어온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최고의 명품 맞춤양복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힘 쏟아 왔다. 그 결과 장 대표는 체촌 시스템을 개발해 복장의 단추부터 어깨모양, 라펠, 바지 허리선, 슈트 깃 등 디자인 차별성을 주고 있다. 장 대표는 “맞춤 옷은 우선 입는 사람이 편하고 체형에 어울려야 한다. 일반 양복점의 경우 치수를 재는 도구가 줄자 등 2~3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봄바니에는 13가지 도구를 개발, 정밀하게 치수를 잰다”면서 “또 바쁜 고객들을 위해 단 한번에 가봉을 끝낼 수 있도록 단층촬영으로 고객들의 체형을 분석해 제가 직접 재단하므로 비대칭이나 특수한 체형을 지닌 고객들에게도 꼭 맞는 맞춤양복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백화점 양복점의 경우 비전문적인 직원이 치수를 재고 기성복패턴에 반영한다. 여기서 정밀하게 재도 가봉을 할 때 미비한 점이 발생하는 데, 기성복은 숙련된 사람이 아닌 치수만 제는 것이 과연 진정한 맞춤양복이라 할 수 있는가(?)”반문하면서 “봄바니에를 찾는 고객들은 치수를 재기 전·후가 달라진다. 한 예로 지난 1988년 한일투자금융 배현규회장(故)이 양복을 맞추러 왔었다. 치수재고 돌아가더니 회사창립기념일에 나눠줄 직원 84명의 양복 티켓을 구매하는 등 상당수 사람들로부터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봄바니에의 장점은 철저한 고객 사후관리를 통한 단골확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본사제품의 경우 100%무료 A/S서비스를 제공하고 타사제품의 경우에도 소정의 수수료만 받고 A/S를 제공한다. 또한 수도권을 기준으로 바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체촌, 가봉서비스를 무료로 진행하고 있으며 그 외 지역은 약간의 교통비를 추가로 제공하면 맞춤 양복의 체촌과 가봉서비스를 현장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봄바니에 수제 명품 양복은 이러한 우수성을 인정받아 이미 20여년전부터 대통령 이·취임식 때나 장차관의 이·취임식에 적용된 바 있다. 또한 대학 교수, 유명 아나운서, 정치인, 스포츠인, 해외 손님까지 유명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장 대표는 맞춤양복의 저변확대를 위해 중저가 브랜드인 봄바니에 뉴욕을 운영하고 있으며, 웨딩사업까지 진출해 결혼예복을 제조하는 등 사업다각화로 업계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또한 업계에서 유일하게 금년 9월부터 서울여자대학교 의류학과에서 테일러링을 강의하고, 조합을 통해 후진양성에 힘쓰는 등 업계 발전을 위해 힘쏟는 등 쉴 틈이 없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진설명: 국내 유일의 손바느질 양복을 만들고 있는 장준영 대표. /2013년 12월 30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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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3-12-30
  • [名匠을 찾아서] 효천 권태현 명장, 생활도자기로 한류 바람 일으키다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 감각표현…작업 공정개선해 대중화 앞장 “예술의 길은 고독한 가시밭길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가면 그보다 아름답고 보람된 길이 없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흙과 불을 쫒아 40여년 가까이 도예와 함께해온 대한민국 세라믹도자기 명장 효천 권태현(사진)선생의 인생과 도자기 예술에 대한 반추이다. 권태현 명장은 젊은 시절 주물과 금속공예로 잔뼈가 굵었다. 공예에 대한 기본지식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뛰어났다. 특히 그는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청자와 백자의 대가였던 고(故)지순택 선생 밑에서 제조방법, 디자인 및 소재 개발 등 일을 배웠다. “저 역시 근본은 백자와 청자다. 이러한 근본을 바탕으로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생활 속에 전통자기의 대중화를 위해 생활자기나 소품 등 대중적인 제품을 통해 전통의 맥을 잇고자 지금까지 달려왔다” 도예는 작가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힘은 단 5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미술작품과 도예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아무리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을 가마에서 구울 때 실수를 하면 모두 물거품이 된다. 권태현 명장은 도자기를 불에 굽는 과정을 ‘불과의 대화와 교감’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이 단순히 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불과 소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권 명장은 “단순한 도자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가가 만든 작품 안에는 그 작가의 철학이 녹아 있다”며 “전통공정의 도자기는 하나의 명품, 특정인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권 명장은 성형작업과 가마 작업에서 전통적 방식의 공정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만 현 시대 배경에 맞는 문양과 작업 공정개선을 통해 도자기를 대중화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권 명장이 제작하는 생활도자기와 소품들은 청자(백자)를 바탕으로 한 투각기법을 이용한 작품이 많다. 이 투각기법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기술이다. 숙련된 도예가 외에는 쉽게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다. 그는 1986년 도자기의 다공투각형 성형방법을 개발(특허)해 투각기법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공정상의 개선은 낮은 생산원가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높은 심미안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으로 도자기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토기는 숨을 쉰다. 수천년을 한결같이 살아서 시간과 공간을 담아 오늘에 다다른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라며 “그릇에 담긴 시간과 공간, 또한 살아서 역사가 된다”고 권 명장은 전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다만 이 시대에 전통으로 다시 숨쉬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은 멍에가 아니라 뿌리와 기본 바탕이 되는 것으로 모방과 흉내 내기가 아닌 시대와 개성을 담아내는 것이 현대도예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전통은 오래되고 깊을수록 현대 도예의 좋은 자양분이 되고 미의식의 뿌리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도자기는 오랜 역사를 갖고 발전해왔지만 현시대에는 세계에 크게 알려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때문에 효천 권태현 명장은 생활도자기와 소품들이 우리 민족의 도자기 발전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3년 5월 29일 동아경제 강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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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3-05-29
  • [장인을 찾아서] 벤지양복점 박장일 대표, 핸드메이드로 나만의 개성을 찾는다
    올 트렌드 라인감 강조되고 몸에 FIT되는 스타일 유행 명장의 작품은 뭔가 다르다. 명장의 작품에는 땀과 기술, 그리고 열정이 배어있다. 오랜 시간 혼신의 노력을 쏟는 고된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간 맞춤 양복 기술자로서 외길을 걸어온 벤지양복점(명동)의 박장일 대표(사진). 그는 이 분야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고객의 마음을 양복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 나의 양복철학”이라는 박장일 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그는 이 일에 뛰어든 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양복을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기술 연마와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맞춤양복과 기성양복은 분명히 다르다. 기성복이 성행하고 있지만 기성복은 기계의 틀에 맞춰 사람의 체형을 획일적으로 입력해 만든 기성양복은 진정한 남자의 멋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맞춤 양복은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 신체 치수를 20~30여 곳을 꼼꼼히 재고 재단, 가봉을 통해 고객의 몸에 맞춰 정성스런 손바느질로 이뤄지므로 신체의 3~4곳만 재고 가공하는 시스템오더 방식의 양복과는 실제로 입었을 때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처럼 자기만의 개성과 느낌, 남자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박 대표는 “몇 가지 패턴으로 똑같은 원단을 사용해 기계적으로 대량생산되는 기성복과 달리 맞춤 양복은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체격 등을 고려하여 단점을 보완, 품격을 지켜주고 개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양복장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양복을 통해 고객과 대화하고 표현한다. 그래서 고객이 내가 만든 옷을 입어보고 칭찬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손님을 맞이할 때 입고 온 옷과 얼굴색을 보면 어울리는 색상과 스타일이 한 번에 파악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올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깨를 좁게 하고, 허리선을 강조해 라인감을 나타내는 몸에 꼭 맞춘 FIT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반면 기성복은 유행을 이끌지만 개개인의 체형을 일일이 맞춰주진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팔과 다리길이 등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스타일로 자신의 개성과 멋을 한껏 더 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맞춤양복을 찾는다”고 말했다. 벤지양복점의 주 고객은 주로 중장년층의 국내 정·재계 인사와 탤런트 김성환 씨와 故 이주일 씨 등 유명연예인들이다. 최근에는 이가탄 광고에 출연한 송해 씨가 벤지양복점의 옷을 입고 나와 입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같은 유명 연예인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 층 고객도 적지 않다는 것이 박장일 대표의 설명이다. 벤지의 경쟁력은 A/S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1 맞춤 양복입기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박 대표는 자신의 자식을 보살피는 것과 같이 몇 년이 지나 고객의 체형이 변한 경우에도 양복을 수선해 준다. 한편, 박장일 대표는 신시장 개척 차원에서 올해 웨딩샵 분야로의 제품공급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맞춤양복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다양한 디자인 개발과 고객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로 자신만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멋의 향연을 전해주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2013년 5월 15일 동아경제 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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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5
  • [지상 갤러리] 한청도요 김복한 명장, 청자에 건 한평생 후회는 없다
    50여년 청자 재현에 헌신… 지난 10월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 우아한 곡선미와 은은하면서도 맑은 푸른빛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손꼽히는 고려청자. 청자의 제작기술을 현대에 복원해 맥을 잊는데 여념이 없는 한청도요 김복한(사진) 선생이 지난 10월 3일 도자기공예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김복한 명장은 “형님들이 모두 도예의 길을 걸었고, 그 영향으로 16살 때 도예에 입문하게 되었다. 특히 큰형님(김응한)이 많이 가르쳐 주셨다. 비록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평생 매진한 것이 큰 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찍이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김복한 명장은 일생을 청자재현에 헌신한 인간문화재 해강 유근형 선생의 고려청자연구소에서 해강으로부터 13여년을 사사 받으며 완숙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김 명장은 “도자기의 맥이 끊기고 있는데, 스승인 혜강 선생은 작고하실 때까지 청자 제작기술의 복원과 재현에 온 힘을 쏟아 부으셨다.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저도 전통의 청자작품의 재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독창성을 가미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문양이나 기법을 먼저 살려내야 하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청자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선별된 흙으로 도자기를 빚고 ‘상감기법’ 등을 이용해 도자기 표면을 장식하고 초벌구이 후 ‘비색’을 띄우게 만드는 청자유약을 칠하고, 다시 1200도 정도의 고온으로 구워내는 과정을 거친다. 김 명장은 조카가 운영하는 흙공장을 통해 선별된 흙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으며, 무늬가 비춰 보이는 찻잔 제조법 등 고난도 성형 특허 기술로 독창적인 문양과 모형의 작품을 제작해 왔다. 김복한 명장은 “도자기는 불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순수한 작가의 열정과 인고의 노력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도토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최상의 한세대 문화의 결정체다. 한 가마에서 하나의 작품이 나올 정도로 평생을 통틀어 제대로 된 작품은 하나밖에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맑게 빛나는 눈동자와 같은 신비와 환상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갖게한다. 갖가지 형상이나 이미지가 색유를 매개로하여 조화롭게 연출하고 있다. 김복한 명장은 예술가는 자기작품에 대한 ‘아집’이 강하면 강할수록 작품을 다듬을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지고 현실과 타협하면 할수록 작품은 졸렬해질 수밖에 없다. 사후에 후학들에게 아름답고 열정적인 연구실적을 물려주는 학습 자료로 남겨줘야 된다고 말한다. 김 명장은 “전통 도자기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도 내 아들들을 포함해 제대로 하는 문하생은 10여명에 그친다. 가장 큰 요인은 도예인들의 생활고 때문이다”라며 “이웃인 일본은 상업적으로 생활자기를 개발해서 전세계로 뿌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자기 이외에도 전통문양을 가지고 상감기법을 조금 곁들여서 생활자기쪽으로 나가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해외 수출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힘으로는 힘겨운 부분이 많다며 정부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도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복한 명장. 그는 ‘한국예술전 종합대상’을 비롯해 각종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한 바 있으며, 국내 및 일본에서 7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각종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해 우리 전통 자기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려나가고 있다. /2012년 11월 28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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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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