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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도예가] 예송요 유기정 명장, 분청도자에 美와 생명을 불어넣다
    32년 전통도자 발전의 외길인생 걸어온 이천시 대표 도예명장 전통도자 발전을 위해 배움과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의지의 장인. 이천시 신둔면 소정리에서 예송요를 운영하고 있는 유기정 명장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도자기를 빚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예송 유기정 명장은 1975년 도암 지순택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성형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송월 김종호 선생, 임항택 선생 밑에서 태토, 성형, 조각, 화공, 유약, 소성 등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섭렵 후 1995년 자신의 호를 딴 예송요를 설립했다. 그간 여러 스승들에게서 배운 다양한 경험은 청자, 백자, 진사, 분청에 이르기까지 알토란같은 지식으로 승화되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유 명장은 “도예문화는 우리민족의 예술로, 그리고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세계 속에 한국인의 얼과 솜씨를 자랑해 왔다”며“ 전통도자기를 제작할 때는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작가의 개성을 살려 작품 속에 혼을 실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유명장의 작품 속에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분청·청자, 생활자기, 전통 다기 등 도자예술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을 보면 맑게 빛나는 눈동자와 같은 신비와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갖가지 형상이나 이미지가 색유를 매재로 하여 조화롭게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정 명장은 도자기는 열연으로 소성되어 나오는 불의 예술이며,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와 숨결이 배어있는 체험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한다. 그는 “도자기는 열연으로 소성되어 나오는 불의 예술이며,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와 숨결이 배어있는 체험과 기다림의 미학”이라며 “분청은 은은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감이 있어 문양과 표현이 다양하고 고급스럽다”고 말했다. 유기정 명장은 전국기능경기대회, 전국공예품대전, 강진청자공모전, 황실공예지평선대전 등 40여 대회에서 입상했고, 2006년 경기으뜸이 선정에 이어 2009년 황실문화재단 황실공예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에는 이천시 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되며 이천시의 도자문화를 대내외에 알리는 선봉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분청사기 상감화문호’가 꼽힌다. 1991년 제26회 동아공예대전 수상작으로 이 작품은 넉넉한 자태의 분청사기 항아리에 꽃잎을 조각하고 잎사귀는 상감으로 처리 부조적 느낌을 준다. 들꽃 문양을 도안화해 여성적인 수수함과 서민적인 여유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유기정 명장은 이천시의 도자기축제와 도자클러스터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젊은 사람들이 선보이는 현대공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며 도자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천시에 도예과가 있는 대학유치와 전통도예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어느덧 이천시 명장을 넘어 대한민국 명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유기정 명장. 강진 청자박물관, 이천시청, 명지대 총장실, 노르웨이 대사관, 중국 경덕진 박물관, 그리고 이달에는 러시아문화원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우리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는 등 전통도예 활성화를 위해 조각가인 부인(조경례)과 함께 디테일한 기법을 전개하고 있다. /2012년 11월 14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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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2-11-14
  • [지상갤러리]한도 서광수 명장, 전통가마로 한국의 향기를 재현
    내년 도예 입문 50주년 ... 예술의 전당서 '회고전' 열어 14세의 어린 나이에 흙과 인연을 맺은 이후 49년 외길을 걷고 있는 한도 서광수 도예 명장(사진). 그는 청자와 백자의 대가였던 고 지순택옹에게 사사받은 이천 도예 ‘2세대’의 좌장이다. '65년 지순택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태토, 성형, 조각, 화공, 유약, 소성 등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기초부터 착실히 연마하면서 새로운 도자 예술세계에 눈을 떴다. 76년부터 80년까지는 도평요에서 가마대장으로 있었다. 그렇게 20여년간 다른 요장에서 도자기술을 익히고 86년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 산자락에 자신의 호를 딴 한도요(韓陶窯)라는 독립된 작업장을 열고 흙의 오묘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치는 도예가가 바로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와 대한민국 명장(14호)인 한도 서광수 명장이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직접 흙을 고르고 몇 번을 다듬고 빚어내고, 유약을 바르며, 며칠을 불과 씨름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하는 서광수 명장은 "특히 도자기의 경우 이러한 연속의 과정들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전통적인 방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을 하나의 그릇에 자신의 정수를 다 쏟아 부을 수 있다"고 한다. 서명장은 흙과 물과 불과 삼라만상에 달관한 도인의 모습처럼 욕심없이 단지 도자기를 빚고 전통 가마에 불을 지피며 우리 전통 도자기의 맥을 이어오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렇듯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서 명장의 주요 작품은 우리나라 고유의 유백색 백자(달항아리)와 청자 그리고 분청, 철사, 청화, 진사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옛 방식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투박함이 일품이다. 그는 도자기의 3대 요소인 흙과 유약, 불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고수한다. 주재료인 흙은 발품을 팔아 구한다. 유하동과 서산 등 일곱 군데에 직접 수비한 흙을 조합해 사용하고, 유약이나 안료도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닌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서 명장은 “진정한 예술품은 똑같은 흙과 유약을 사용했는데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이 빚어내 탄생되는 것”이라며 “실제로 6칸의 가마에서 대략 1백50점을 구워내는데 성공률은 20~30% 안팎. 그나마 작품성이 높은 것은 10여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불질’은 도공의 가장 심오한 작업이다. 특히 불을 감지하는 능력은 바로 ‘느낌’으로 이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한도요는 전국적으로 전통 가마만을 고집하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이다. 그가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가스가마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한 색감의 작품을 오직 전통가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오랜 의지 때문이다. 한도요 전시실에는 오랫동안 그의 혼이 배어있는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가마를 열고 보면 똑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고, 하나같이 다 다릅니다. 천지만물이 모두 다르게 생명을 잉태받았듯이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죠. 같은 흙과 유약, 가마인데도 각기 다르게 나오는 것을 보면 마치 한 부모 밑에 태어난 형제들이 모두 다른 것과 같습니다"라고 서 명장은 장작 가마의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서 명장의 전시실에는 다양한 빛깔과 형태의 도자기들이 마치 가마에서 각기 다르게 태어나듯이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고 있다. 청자, 백자, 분청, 청화, 진사, 진채가 있고 인화, 음각, 투각, 문양이 있다. 그는 1996년과 97년에 서울과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98년 이후 일본 이바라키 현과 후쿠오카, 코베, 쿄토 등에서 3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명성을 얻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NHK TV방송국에서 이천의 그의 요장을 찾아와 1년여에 걸쳐 도자기 만드는 전 과정을 촬영하여 일본에 그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서 명장은 내년이 도예 입문 50년이 되는 해다. 입문 50주년 회고전을 내년 11월11일~20일까지 예술의 전당에 100~15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생 도자기로 외길을 걸어온 서광수 명장은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도자기 박물관을 짓고 후진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오늘도 전통 가마에 불을 지피면서 껄껄 웃는다. /2010년 9월 13일 동아경제 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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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0-09-13
  • [이사람]경기도무형문화재 29호 화각장 한춘섭
    전통 화각공예에 ‘혼’불어 넣다 故음일천 선생 화각공방 입문...전통·현대 접목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장롱, 함, 반상, 함지, 필통, 반짇고리 등의 가구나 물품을 장식할 때 가장 보편적인 것은 나전칠고 공예다. 그러나 나전만큼 역사가 깊거나 널리 쓰이진 않았지만 화각(華角)공예는 더 화려한 멋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찬연한 아름다움은 예술의 경지로까지 표현된다. 경기도무형문화재 29호 화각장 명화(明花) 한춘섭(사진)은 지난 43여 년 동안 화각제작 기능을 전수받아 우리의 잊혀져가는 화각공예를 계승·발전시켜온 장인으로 손꼽힌다. 화각공예는 쇠뿔을 얇게 갈아 각지(角紙)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붙여 무늬를 만드는 기법으로 그의 손을 거쳐 가는 공예품들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화각장 한춘섭은 “화각공예는 재료가 귀하고 공정이 까다로워 생산이 많지 않아 옛날 특수귀족층들의 기호품이나 애장품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며, 우리의 전통공예 가운데서도 화각은 그 가치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화각공예가 한국의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전통공예품임을 나타내는 증거는 그 재료가 되는 황소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그려진 면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에 그림을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도 그림을 볼 수 있는 기법이 오직 우리의 황소뿔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각장 한춘섭이 화각공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6세에 나전칠기로 입문했으며, 그 후 지난 1967년 故음일천 선생 화각공방에 입문하게 되면서 부터다. 음일천 선생은 어린 한춘섭의 재능을 보고 나전칠기 대신 화각공예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이때부터 자신의 천직으로 알고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을 참아가며 전통 공예를 계승한 결과 오늘날 화각장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화각장 한춘섭이 그려내는 화각공예는 영혼이 담겨있는 공예품의 집합체로 일컬어진다. 백골의 경우 소목공예에서, 색채는 석채 혹은 단청안료에 아교를 섞어 채색하는 한국 채색화의 회화에서, 그리고 마감하는 칠은 방습, 방충 및 인체에 무해한 천연의 칠인 옷칠에서 비롯된 종합예술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화각 서수문함, 화각 모란문 주칠 머릿장, 주칠 삼층장, 화각 풍속화머릿장, 화각 대약장, 화각 봉황문경대 뿐 아니라 양반 내실에서 사용하는 화각 보석함, 인장함, 화각 의걸이장, 화각 십장생문 이층장 등 귀중한 공예품들이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다. 문양은 십장생, 용, 호랑이, 봉황, 사군자를 비롯해 장수, 부귀, 건강과 평안 등을 염원하는 문양이 주를 이루며 이들이 나타내는 아름다움은 매우 찬란하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는 60평생을 화각공예에 묻혀 살면서 각종 전승공예대전 입상, 해외국빈선물 다수 제작, 국가유물 재현제작, 무형문화재 명예 등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며 자긍심도 느꼈지만 전통문화계승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전통을 이끌어 내는 좋은 작품, 진정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그는 “전통공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교육적인 체계와 화각 전통공예가 사장되지 않도록 지원·발굴하는 인프라 구축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 6월 28일 동아경제 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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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0-06-28
  • [명장 초대석]한도요 서광수 명장 "흙과 고독한 싸움 ‘한평생’"
    전통 도자기 재현에 구슬땀…40년 만에 재현 ‘불질’은 도공의 가장 심오한 작업…예술경지 표현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직접 흙을 고르고 몇 번을 다듬고 빚어내고, 유약을 바르며, 며칠을 불과 씨름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하다. 특히 도자기의 경우 이러한 연속의 과정들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지만 전통적인 방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함은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표현된다. 도공의 ‘혼’과 불의 ‘혼’이 더해져 도자기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빗어내는 도예가가 있다. 대한민국 도예명장인 한도요 서광수 명장(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ㆍ사진). 서광수 명장은 4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흙과 삶을 같이 해왔을 정도로 전통 방식의 가마를 고수하는 손꼽히는 전통 도예가이다. 1961년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에 흙과 인연을 맺은 그는 올해로 48년째 우리전통 도자기의 맥을 이어오는데 일평생을 바쳤다. 서 명장이 도자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65년 청자와 백자의 대가였던 고 지순택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성형, 조각, 태토, 화공, 유약, 소성 등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배우면서 새로운 도자 예술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후 67년부터 80년까지 ‘도평요’에서 가마대장으로 있으면서 힘겨운 세월을 감내하며 도자기술을 익힌 그는 1986년 지금의 경기도 이천에 자신의 호를 딴 한도요(韓陶窯)라는 독립된 작업장을 열었다. “전통을 잇는 도자기의 일은 자신만의 철학과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그는 “좋은 것만 보고 흉내 내서는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서 명장의 작품은 우리 고유의 유백색 백자와 청자로써 옛 방식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투박함이 일품이다. 그는 지난시절 백자의 유백색 재현에 성공해 그의 스승인 고 지순택 옹과 고려청자의 재현에 평생을 바쳐온 해강 유근형 옹이 작고한 이후 이천에서 도자기분야에서는 유일하게 무형문화재(41호)로 지정 받기도 했다.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후 후세 양성이나 문화부흥 등 어깨가 무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힘들게 지켜온 삶이 이제야 인정받은 것 같아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 명장은 “진정한 예술품은 똑같은 흙과 유약을 사용했는데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이 빚어내 탄생되는 것”이라며 “실제로 6칸의 가마에서 대략 1백50점을 구워내는데 성공률은 20~30% 안팎으로 그나마 작품성이 높은 것은 10여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불질’은 도공의 가장 심오한 작업이다. 특히 불을 감지하는 능력은 바로 ‘느낌’으로 이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한도요는 전국적으로 전통 가마만을 고집하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이다. 그가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가스가마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한 색감의 작품을 오직 전통가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오랜 의지 때문이다. 그의 전시실에는 다양한 빛깔과 형태의 도자기들이 마치 가마에서 각기 다르게 태어나듯이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 고형사각호, 고형무지토, 백자육각정병 등 귀중한 도자기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서 명장은 지난시절 서울과 대구에서 개인전을 비롯해 일본 아바라기현과 후쿠오카, 고베, 도쿄 등에서 수십 차례의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한때 일본 TV방송국에서 이천 그의 도예장을 찾아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자신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는 “도예 작품과 도예가들이 높게 평가받는 일본, 중국과 달리 우리는 아직 작품을 구입하고 감상할 줄 아는 소비층이 미미한 수준”이라며 “우리의 전통문화가 제대로 평가받고 해외 수출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서 명장은 앞으로 우리의 제대로 된 전통도예 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이를 계승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한 ‘전통도예박물관’을 짓는 게 가장 큰 숙원사업이다. 이를 위해 자신만의 길에서 자신만이 창조해 낼 수 있는 빛깔과 맛을 살리며 전통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작정이다. /2009년 9월 28일 동아경제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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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09-09-28
  • [명장초대석]세창도예연구소 김세용 소장 '작품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죠'
    세창도예연구소 작품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죠 지난 10월 도자기 기능전승기관으로 선정 예술성과 창작성에서 가장 독보적인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청자’이다. 세창도예연구소 김세용 소장은 전통자기 전승과 발전에 한평생을 바친 장인으로 지난 10월 도자기 진흥재단에서 도자기 기능전승자 요람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김 소장은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자기를 떠나 생활자기 분야로 돌아서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묵묵히 전통을 고수하며 옛것에 대한 소중함과 청자의 우수성을 외국에 알리는 전문가들이 있어 그나마 우리의 문화가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국적 없는 도자기는 청자가 아니다 라는 비방도 많이 들었다는 김 소장은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연구하고 세상의 모든 가치를 담기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4가지 원칙을 갖고 작업에 임한다는 김 소장은 아름다운 청자를 만드는 것, 아름다움에 정교함을 집어넣는 것,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수행과정으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종교의 가르침을 바탕에 두는 것을 항상 머릿속에 그린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전통 가마 보존협회가 일본에서 주최하는 17-23일까지 그룹전과 25-29일에는 명지대 개교 60주년에서 김 소장의 작품이 전시회를 갖는다. 또한 사할린 박물관에서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며 영국, 스위스, 세계도자기센터, 청와대 등 세계 여러 곳에 김 소장의 청자가 소장되어 있다. 외국에서 전시회를 열다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외국 사람들이 청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다고 말하는 김 소장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면 청자의 우아함과 멋진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12-13세기의 고려청자 재현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를 담는 그릇. 즉, 대변할 수 있는 청자를 만들어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혼을 넣은 청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바보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설명한다. 2002년 세라믹 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김 소장은 후학 양성을 위해서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사할린, 이탈리아(베네치아) 등에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유럽, 미국, 중국, 남미 등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청자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홍보대사역도 수행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청자를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 소장은 한단계 발전된 청자 문화를 선보이고 이를 전수하기 위해 후배양성에 많은 힘을 쏟는등 대한민국 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면서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2008년 11월 12일 동아경제 김호진 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8-11-14
  • [지상갤러리]한도요 서광수 명장 "도예가와 불이 하나가될 때 '걸작'이 나오죠
    도예명장·무형문화재로 지정… 도예박물관 설립이 꿈 14세의 어린 나이에 흙과 인연을 맺은 이후 47년 외길을 걷고 있는 서광수 도예 명장. 그는 청자와 백자의 대가였던 고 지순택옹에게 사사받은 이천 도예 ‘2세대’의 좌장이다. 65년 지순택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태토, 성형, 조각, 화공, 유약, 소성 등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기초부터 착실히 연마하면서 새로운 도자 예술세계에 눈을 떴다. 76년부터 80년까지는 도평요에서 가마대장으로 있었다. 그렇게 20여년간 다른 요장에서 도자기술을 익힌 그는 86년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 산자락에 자신의 호를 딴 한도요(韓陶窯)라는 독립된 작업장을 열고 흙의 오묘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갔다.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축제를 접한 후 도자예술의 고장인 이천에도 이 같은 행사를 열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동료 도예가 7명과 함께 ‘도자기장터’처럼 시작했는데 문화관광부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후 도자기엑스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미약하나 국내 도자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돼 뿌듯하다는 서 명장은 이로 인해 94년 문화부 장관에게서 공로장을 수여 받았다. 그는 또한 1993년에 백자의 유백색(어머니의 젖 색깔) 재현에 성공, 국내는 물론 일본 등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아바라기현과 도쿄 등에서 초대전을 갖는 등 일본에서만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열린 초청 전시회에 참가하여 우리 도자기 예술을 알리는 데도 심혈을 쏟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그의 스승인 지순택옹과 고려 청자의 재현에 평생을 바쳐온 해강 유근형옹이 타계한 이후 이천에서 도자기분야에서는 유일하게 경기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되었다. 한도요는 전국적으로 전통가마만을 고집하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 가마를 여는 날이면 어김없이 많은 이들이 찾아와 ‘불지피기’를 지켜본다. 그가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가스가마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한 색감의 작품을 오직 전통가마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도자기 생산업체가 실패의 위험이 낮고 비용이 적게 드는 가스가마를 사용합니다.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어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나오는 데다 표면이 깨끗하거든요. 그에 반해 전통가마에서는 같은 모양과 색깔이 없는 오직 하나뿐인 작품만 나옵니다.” 똑같은 흙과 유약을 사용했는데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이 빚어낸 예술품이 탄생한다는 것이 서 명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6칸의 가마에서 대략 150점을 구워내는데 성공률은 20~30% 안팎. 그나마 작품성이 높은 것은 10여점 정도다. 서 명장의 작품은 주로 전통백자이다. 전시실에는 백자달항아리를 비롯해 백자육각정병, 고형사각호, 고형무지토 등 그의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대변해 주고 있는 도자기들이 가득하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문양이 없는 ‘무지백자’다. 유백색(乳白色)이 나와야 최고로 쳐 준다는 무지백자는 불의 온도가 가장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 ‘불질’은 도공의 가장 심오한 작업이다. 특히 불을 감지하는 능력은 바로 ‘느낌’으로 이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다. 장작 몇 개 더 하고 덜 함에 따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서 명장은 도예 작품과 도예가들이 높게 평가받는 일본, 중국과 달리 우리는 아직 작품을 구입하고 감상할 줄 아는 소비층이 미미한 수준이라고 아쉬워했다. “전통을 잇는 사람들에 대한 정부와 애호가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도예를 비롯해 우리 전통문화가 제대로 평가받고 해외 수출을 통해 이를 널리 알려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물론 도예가들도 전문성과 직업의식을 갖고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올해에는 ‘중요무형문화재’에도 도전할 계획이라는 서 명장의 희망은 조그마하게 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료를 모으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도자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여 전통 도자기 문화를 계승하고 활성화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2008년 2월 22일 동아경제 이종화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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