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8(수)

문화·레저
Home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실시간뉴스

실시간 명장초대석 기사

  • 4대째 고려청자를 빚는다
    '노크랙' 작가로 유명…선조들의 혼과 숨결 계승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아! 이작품은 분명 그 작가의 작품이야 금새 연상되는 그런 작품들이 종종있다.작품에서 풍기는 작가만의 색깔과 화풍이 그걸 짐작케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시 도예촌에서 전통 고려청자를 재현하기로 명성이 높은 명장이 있다. 바로 송월요 김종호선생. 그는 물레나 상형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온 한국 도예계의 한지평을 연 도예가 고 김완배선생의 차남이다. 고려청자의 비색탐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그는 지난 79년 이천에 송월도예연구소를 설립. 13세기 이후 단절된 고려청자의 완벽한 구현을 위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자신만의 작품속에서 끊임없는 실험을 거듭해오고있다 처음에는 흙이 좋아 만진 것이 어언 50년이 흘렀다는 김종호 선생은 "고려청자는 신비한 비취색과 유려한 곡선 그리고 독특한 문양으로 투명하고 색감이 살아있다.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는데 퇴토가 중요하다. 그래서 전라도 강진. 고창의 흙을 선택했다" 며 퇴토가 좋지 않으면 작가의 열과 성을 다해도 신비의 색이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김종호 선생은 작품을 대할 때마다 초심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선조 들의 숨결을 느끼고 재현하고자 여념이 없다. 특히 흙배합과 유약처리 등은 수십번의 데스트를 통해 색을 자아낸다. 이것은 엄격하게 계산된 기하학적 형태와 대칭적균형을 갖춘 아름다운 구성체로 초월적 시간과 공간의 함축이라고 할수 있다. 김선생의 작품을 보면 맑게 빛나는 눈동자와 같은 신비와 환상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갖게한다. 갖가지 형상이나 이미지가 색유를 매개로하여 조화롭게 연출하고 있다. 특히 빙렬(氷裂) 현상을 없앤 이른바 '노크랙(no crack)' 작품이라는 점이 더욱 주목받는다. 이는 작가 자신이 작품속으로 몰입하는 경지에서만이 성취되는 신비의 예술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김종호선생은 고려청자의 은은한 빛을 80%까지 재현했으며 나머지 20%를 채울 때까지 남은 여생을 흙과 함께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과 열정이 고려청자의 가치로 인정받아 국내외 정, 관계, 경제계의 유명인사들이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뷰 말미 김종호 선생의 마음 한구석은 어두워 보였다. 요즘 일부 젊은 세대들이 작품성보다는 눈앞에 이익만을 쫓아가는 상업적인 측면이 안타깝다며 도자기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힘써주기를 김선생은 당부했다. 부친에 이어 오직 흙과 함께한 50여년 외길 세월 속에 아들. 손자까지 4대가 자연스런 도예 계승으로 이루어지며 옛 고려청자 재현에 정진하고 있다. "깨뜨리는 아픔은 또 다른 창조의 준비입니다" 송월요의 글귀에서 그 고집과 열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송월요 김종호 선생은 완벽한 청자의 재현을 위해 오늘도 흙과 더불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설명 : 전통 고려청자 재현에 혼을 불어넣는 김종호 선생과 3대를 잇는 김성래(좌)씨가 도자기를 감상하고 있다. /동아경제 2007년 6월 29일 김대희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7-06-30
  • 초대석/무형문화재 41호 서광수 명장-"전통도자기의 미적가치를 재현한다""
    흙과 물과 불과 삼라만상에 달관한 도인의 모습처럼 욕심없이 단지 도자기를 빚고 불을 지피며 살아가는 도예가가 있다. 바로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 한도요 서광수 명장. 그는 40년이 넘게 흙과 삶을 같이 해왔고, 지금은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에서 전통 가마를 고집하는 몇 안되는 한국 전승도예가이다. 1961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흙과 인연을 맺은 서광수 명장은 올해로 46년째 오로지 우리 전통 도자기의 맥을 이어오는데 평생을 바쳤다. 서 명장은 작업 과정은 초벌구이에서도 가스와 장작 가마를 겸용하지 않고 순수 장작 가마로 구워 도자기의 생명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이렇듯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서 명장의 주요 작품은 우리나라 고유의 유백색 백자이다. 청자와 분청, 적목, 진사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모든 분야에 이른다. 전승도예에 충실한 서 명장의 주요 작품은 실용적인 생활 용기보다는 감사용 도예품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의 공방들은 실패의 위험이 낮고 비용이 적게 드는 가스 가마를 사용하는 추세지만 서 명장이 장작 가마를 고수하는 것은 전통 도자기의 미적 가치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자기의 3대 요소인 흙과 유약, 불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고수한다. 주재료인 흙은 발품을 팔아 구한다. 유하동과 서산 등 일곱 군데에 직접 수비한 흙을 조합해 사용하고, 유약이나 안료도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닌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양구도석과 은, 고개도석, 석회석, 대리석 등의 도석 역시 직접 채취한다. 발색이 좋은 철을 구하기 위해 철광을 찾아가기도 하다보니 흙 밟는 과정이나 반죽 역시 빠지지 않는 그의 몫이 된다. 그의 전시실에는 오랫동안 그의 혼이 배어있는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가마를 열고 보면 똑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고, 하나같이 다 다릅니다. 천지만물이 모두 다르게 생명을 잉태받았듯이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죠. 같은 흙과 유약, 가마인데도 각기 다르게 나오는 것을 보면 마치 한 부모 밑에 태어난 형제들이 모두 다른 것과 같습니다"라고 서 명장은 장작 가마의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서 명장의 전시실에는 다양한 빛깔과 형태의 도자기들이 마치 가마에서 각기 다르게 태어나듯이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고 있다. 청자, 백자, 분청, 청화, 철화, 진채가 있고 인화, 음각, 투각, 문양이 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병, 완, 합, 잔, 항아리, 주자, 연적이 있다. 이렇듯 서 명장이 여러 작품을 하는 것은 전승도예를 하기 때문이지만 외국을 나가 전시회를 하려면 한 가지로는 안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1996년과 97년에 서울과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98년 이후 일본 이바라키 현과 후쿠오카, 코베, 쿄토 등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명성을 얻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NHK TV방송국에서 이천의 그의 요장을 찾아와 1년여에 걸쳐 도자기 만드는 전 과정을 촬영하여 일본에 그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서 명장은 작품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하지 않고 그 작품이 자신을 부를 때까지 그리고 마음이 움직일때까지 기다린다. 보통 작업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음날 낮 10시까지 한다. 전날 흙을 준비해 놓았다가 주위가 조용할 때 작업을 한다. 그런 그의 작업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언제 작업을 하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한다. 이렇듯 한편생 도자기 명장으로 외길을 걸어온 서광수 명장은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도자기 박물관을 짓고 싶다"며 전통 가마에 불을 지피면서 껄껄 웃는다. /동아경제 2006년 10월 18일 성치욱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7-06-12
  • 세창도예연구소 김세용 명장-'고려청자'도 시대상 담아 계승해야
    세창 김세용 명장 '청자 이중투각' 빚어 한민족의 얼이 서려있는 청자의 비색을 찾아 평생을 도공의 삶에 바친 김세용씨는 고려청자를 가을 하늘색에 비유했고 수많은 작품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문화를 알린 대한민국 명장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자신을 비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빚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비운자리에 우주의 에너지 같은 힘이 작용해서 혼이 실린 예술작품으로 태동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김세용명장은 40여년의 세월을 흙 속에 몸과 영혼을 바쳐 왔다. 도자기는 빚는 사람의 정신과 정성이 들어가야만 아름답고 섬세하며 신비로운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흙과 불과 물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도자기는 물질문명에 치우친 이 시대에 사람들의 정신을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열쇠라고 믿는 그는 도공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흙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흙을 알아야 아름다운 도자기의 비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흙을 공장에서 사다가 쓰는 후학들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그는 30년 전부터 도자기의 모토인 흙을 만드는 것부터 천연재 유약을 개발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운 색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비색의 청자를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작품에 도전을 하여 만들어 낸 도자기가 투각이다. 투각은 하나하나 손과 칼로서 조각을 해야 하며 이중으로 만들어져 단형의 도자기보다도 훨씬 어려우며 아주 작은 오차도 허락치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섬세한 투각에는 자연을 담았다. 섬세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은 자연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작품은 학, 구름, 무궁화, 사군자, 도토리, 포도, 십장생, 매화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도자기는 살아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상하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느낌도 감명도 주지 못하는 물질로서만 존재하는 도자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는 살아있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 물, 불, 바람과 합일을 이루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10여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청자 매병과 주병을 만들어 낸 그는 통일 염원을 담은 금강산 만물전도를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상감청자에 성공했으며 무궁화, 십장생, 보상당초문, 용 등 총 9점을 제작하였다. 일본인들이 그의 전시장에서 공손한 자세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끼며 자부심 또한 크다고 한다. 현재 세창도예연구소는 경기도 관광업체 제5호로 등록되어 있고 그의 작품은 러시아의 빼데스버그 민속 박물관에 전시를 비롯하여 86년 아시아 경기대회와 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과 이천도자기 축제기념 한·중·일 국제도예전 등 수많은 작품을 출품했다. /동아경제 2005년 11월 2일 정혜원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7-06-12
  • 송월요 김종호-'도공 4代' 가업 계승
    고려청자의 ‘혼’ 잇는다 흙으로 빚는 불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도자기의 ‘예술혼’이 4대까지 이어지며 이천의 도예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고려청자의 비색탐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아온 송월 김종호씨가 이천에 뿌리를 내린지도 어언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부친에 이어 오직 흙과 더불어 살아 온 세월 속에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흙과 함께 하는 삶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런 도예 계승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자기는 해방 전부터 빚기 시작했는데 저희 뿐만 아니라 집안이 다 도예를 하고 있습니다. 도예를 하면서 어려움에 처해 파산되기도 했으며 백자나 청자를 논하며 발전을 한 것은 의식주가 해결되면서였다.”고 말한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송월요는 국내 굴지의 총수들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국빈에게 선물하는 도자기로 쓰이고 있으며 단연코 현재 명품의 대열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청자고 백자고 발색은 흙이 좋아야 합니다. 흙이 좋지 않으면 열과 성의를 다해서 빚는다고 해도 색이 나오질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명장도 흙을 보고 색을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하지 타고난 도공이란 없는 것." 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동안의 노력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 온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청자도 푸르다고 해서 청자가 아니고 백자도 희다고 백자가 아니라고 한다. 작품이나 물건이나 부족할 때 희소가치가 있는데 상업화되고 상품화되다 보니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료비나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가스가마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색감에서는 여전히 장작가마가 최고”라며 육감으로 불을 지펴야하는 장작을 앞으로도 가스와 함께 병행할 것이라고 한다. 선친에 이어 자연적으로 도공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도공의 길을 걷는걸 후회 한 적은 없다. 다만 가마에서 도자기가 나올 때 제 마음같이 안나올 때 속상한 건 사실이라고 말하는 그는 전통계승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지만 나름대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상품화로 전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좋은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지원을 해서 앞으로의 계승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당부한다. “연구는 끝없이 해야할 숙제지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좋은 흙을 찾아내는 것도 연구합니다. 자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각을 잘했다 모양이 좋다 라고 만 하지 색을 보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옛날 골통품을 보더라도 색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유약은 자기에서 10%~15%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유약이 좋다고 좋은 색이 나오는 게 아니고. 좋은 흙을 써야 색이 잘나오는 것”이라며 그는 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세대를 넘나들며 4대가 이어 가는 도공의 혼이 큰 맥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동아경제 2005년 10월 12일 이정아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7-06-12
  • 흙과 맺어진 한국도예 '거목'
    도자기공예 무형문화재 선정 사회적으로 전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간혹 생각이 트인 젊은이들이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 둘 나서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현대식 편리함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년 세계적 수준에 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경기도 이천, 이곳은 우리나라 도예에 대한 전통의 손길들이 곳곳에 배여 있는 곳이다. 여기에 지난해 도자기 명장으로 도자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한도(韓陶) 서광수 선생이 있다. 1961년 14살의 나이로 항아리 공장의 한켠을 작업장으로 삼았던 그는 현재 백자부문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었고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해내는 몇 안되는 명장 중의 명장이다. 올해 처음 가마를 때느라 온통 연기냄새를 풍기는 그의 요장(窯場)은 그저 불이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운 빛깔을 염원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예는‘흙과 불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만큼 사람만 노력한다고 작품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도공의 손길만큼 중요한 것도 없어 보인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직접 흙을 고르고 몇 번을 다듬고 빚어내고, 유약을 바르고, 며칠을 불과 씨름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런 연속의 과정들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지만 전통적인 방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함은 모든 힘겨움을 잊게 할 만큼 충분하다고 한다. “무엇이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마다 방법이 다른데 다른 좋은 것만 보고 흉내 내서는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후 후세 양성이나 문화부흥 등 어깨가 무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힘들게 지켜온 삶이 이제야 인정받은 것 같아 감회도 새롭다는 그는 “전통을 잇는 일은 고집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며 “앞으로 구식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더욱 왕성한 활동을 다짐한다. 현재 그가 주력하는 부문은 백자로 번들대지 않으면서도 깊은 멋이 우러나는 유백색의 작품들은 단정하면서도 진중하고 순박해 보이는 것이 도공의 모습을 닮아있다. 이렇게 한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전 과정에 걸쳐 하나하나 깊이 있게 전통을 담아내는 장인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만 30회에 걸친 전시를 하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도 작품을 통해 한국도예의 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경제적 어려움은 있다. 돈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전통을 잇는 사람들에게 정부와 애호가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작품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서광수 선생은 앞으로도 자신만의 길에서 자신만이 창조해 낼 수 있는 빛깔과 맛을 살리며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7-06-12
  • 질박하고 격 있는 분청 빚어내
    수많은 도예가들이 모여 우리나라 도자기 산실을 빚어낸 경기도 이천. 이곳에 꾸밈없고 순박한 분청을 빚어내는 토광 장동국 선생이 있다. 도자기를 빚고 굽는 일 외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는 30년 넘도록 도자기에 빠져 있는 도예가이다. 구상, 만들기, 조각, 그림까지 전 과정을 혼자서 다 하고, 작품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싣는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듯 토광 선생의 도자기는 하나 하나 모두 다르다. 전승적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기법’을 가미했다. 작품의 문양은 어느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의 모습, 대화, 성격 등 모든 일상이 아이디어가 된다. 또 스님들과 대화하면서 얻는 세상 이야기, 눈 속에 핀 꽃, 산꼭대기 자리잡은 고목 등도 새로운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것이 반영돼 있기에 그의 작품들 속에는 투박하고 서민적인 감각이 분출돼 있다. 그의 작업은 분청사기가 주류를 이룬다. 분청이야 많은 작가들이 작업하고 있지만 그의 것만큼 질박하면서도 격이 있는 것이 흔치 않다. 그래서 도자기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작가를 보기보다 작품을 유심히 관찰한다. 도자기는 자신이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불이 되어 하나의 그릇에 자신의 정수를 다 쏟아 부을 때야 가능한 것이다. 정갈한 마음, 정갈한 육신의 손이 이루어 내는 진정한 도예 작업의 결과는 그래서 아직도 어떤 과학 기능으로도 해석될 수 없는 신비함에 묻혀 있다. 토광 선생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오늘의 도예는 대량생산을 통해 이른바 ‘찍어내는 그릇’이라는 쓴소리를 피할 수 없다. 도예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조형을 위한 조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토광의 작품들은 작품을 대할 때 심혈을 기울이며 도예 정신의 맥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이 담겨 있기에 바라봄의 기쁨이 되고 있다. 도자기의 신비에 매혹되어 흙과 씨름한지 30년, 그 세월동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도자기의 품성, 도자기의 빛깔, 도자기의 향취에 빠져들어 흙의 마음, 흙의 육신을 지닌 사람이 되었으리라. 토광 장동국 선생은 오는 13일까지 서울 예문갤러리에서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다.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03-12-1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