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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의 허전함을 추상으로 復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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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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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肉眼)으로 절대자의 피조물인 자연을 관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신실(信實)한 자세로 신(神)을 영접(迎接)할 때에야 비로소 심안(心眼)이 열리고 사물의 본령(本領)을 파악할 수 있어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곡산 기슭. 서양화가 장완(張完)은 육순을 넘긴 나이에도 표정만큼은 미소년(美少年)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장티푸스로 2달간 결석한 뒤 출석한 날 그린 그림을 선생이 교실 미화란에 걸어준 ‘배려’로 붓을 잡게됐다는 대목에서 더욱 해맑다.

여기에 마흔이 되도록 자칭 ‘파락호(破落戶)’ 생활을 전전하던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전향(轉向)하면서 얻은 아타락시아(Ataraxia)가 더해져 연유한 것이리라. 하나님에 귀의(歸依)한 이때부터 작가의 작품에서 ‘거품’이 빠진다. 손이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창작을 시작하게 된 것.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소리, 새소리, 폭포수소리까지도 화폭에 담아 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빛깔과 귀로 들리는 소리의 하모니를 마음의 색으로 표현해 내고 있어요”

작가 張完은 19세기말 프랑스의 고갱, 베르나르를 중심으로 한 퐁타벤파(派) 화가들을 닮았다.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종합주의(綜合主義)를 표방하고 있어서다. 피할 수 없는 소재의 구상성의 한계를 관념(觀念)으로 극복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최근작인 「하와의 꿈」에 나체의 여인들 사이에 돌고래가 등장하는가 하면 「선율 속의 여인」에는 벌거벗은 여인 뒤로 첼로와 우산이 놓여있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을 그린 작품 「生」은 분명 구상임에도 생활력 강한 어머니의 마음을 연상케 하는 추상성이 배어난다.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작품에 신심(信心)을 체화(體化)하는 작가는 성화(聖畵)를 일생의 노작(勞作)으로 남기고 있다. 절대자께서 영안(靈眼) 주심에 ‘인색’해 작품 하나에 십수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죽이는 장면인 300호에 달하는 그림은 장장 14년에 걸쳐 빛을 보게된 작품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소년’이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청한다. 오랜 파리 유학생활에서 온 식습관 때문 일터지만, 그의 세계관과 작품세계를 들여다 본 후라 단순히 식성으로 넘기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완 작가 약 력
- 1939년 전북 김제生
- 홍익미대 서양화과(1965년)
- 국전 국무총리상 (제28회)
- 국전 연4회 특선(제26∼)
- 스페인 프레국제전 금상(81년)
- 한국기독교미술상(2001년)
- 개인전 8회 단체전 15회
- 現 한국신미술회이사 한국기독교미
술인협회부회장
- 대한예수교장로회 청아한교회 장로

/ 정연진 기자 pressj@d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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