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추진비 카드 미리결제 인건비 당겨쓰는 등 편법 횡령·부당사용 등 우려에도 행안부, 묵인한채 활용권고
무리한 선금지급 부실공사로 용혜인 "신속집행 폐지 검토 총량 관리시스템 마련해야"
[동아경제신문=유경석 기자] 행정안전부가 지방재정 신속집행 제도(이하 ‘신속집행’)를 추진하면서 각 지자체에 편법적인 방법을 권장해 논란을 빚고 있다. 신속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지자체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부작용도 점점 커진다는 지적이다. 신속집행이란 상반기에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에 기여한다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지만, 득보다 실이 커지면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2024년 상반기 지방재정 집행 적극 활용 지침(이하 ’지침‘)’에 따르면 행안부는 신속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각종 편법을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편법까지는 아니지만 무리한 집행으로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방식도 독려하고 있다. 지침은 크게 소비분야와 투자분야로 나뉜다.
소비분야, 부정과 편법의 경계선…카드 미리 긁고, 인건비 ‘당겨쓰고’
소비분야에서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법의 경계선을 오간다. 행안부는 소비분야에서 ▲업무추진비 개산급 지급 적극 활용 ▲공공요금 선납 ▲익월 지급 원칙인 초과근무수당 당월 지급 ▲직책수당, 정액 급식비 미리 지급 등을 독려한다.
업무추진비는 가장 흔한 예로 부서 회식과 행사 후 손님 접대를 들 수 있다. 개산급이란 ‘갚거나 주어야 할 돈의 액수가 아직 확정되지 아니하였을 때 그 금액을 미리 대강 계산하여 주는 일’을 의미한다. 개산급 방식을 활용하기 위해 일선 공무원들은 주변 식당에 미리 카드를 긁어놓고 회식이나 행사 후 사후정산하는 방식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전기세나 수도세를 미리 납부하기 위해 한전ㆍ상하수도사업소와 협의해야 하고, 심지어는 초과근무수당ㆍ직책수당ㆍ급식비 등 사실상 공무원 보수에 해당하는 비용조차 ‘당겨서’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분야 재정지출은 불용액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속집행의 가장 중요한 취지 중 하나가 불용액을 줄이는 것인데, 이미 불용액이 발생하지 않는 분야에서 편법에 가까울 정도로 무리한 방법을 쓰다보니 행정력이 크게 낭비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특히 이런 방법들은 민간단체보조금 사업에서는 엄격하게 금지하는 항목이어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민간단체에서 이런 방법을 사용할 경우 사업비를 환수하거나 사업을 취소시키는 사유가 되기도 한다.
투자분야, 무리한 선금집행으로 부실공사 우려…‘횡령ㆍ부당사용’ 우려있다면서도 권고
투자분야에서는 ▲선금급 집행 활성화 ▲민간경상사업보조금 일괄 교부 ▲지방보조금 중 공사비 선금 집행 등을 권장한다. 편법은 아니지만 무리한 집행으로 언제라도 문제가 터질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 지침 곳곳에는 ‘횡령ㆍ부당사용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ㆍ감독 철저’라는 단서를 붙여놨다. 행안부가 이미 이 방법을 사용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무리한 방법은 큰 부작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용혜인 의원은 신속집행 문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한 공무원노조를 통해 선금 지급 후 공사에 문제가 생겨 징계를 받은 사례를 접했다. 이 공무원노조에서는 전국 지부를 통해 의견을 취합했는데 신속집행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부실공사’를 지목했다. 실제 공무원들은 선금을 확대하면서 부실공사와 그에 따른 징계를 늘 걱정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의견을 낸 한 공무원은 “신속집행은 순간이지만 감사는 영원하다”며 “업체 선금 주고 문제 생기면 담당 공무원만 ‘독박’쓰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신속집행 문제점을 꼬집었다.
신속집행, 각종 연구에서 문제점 지적…긍정 효과 미미, 부정 효과 뚜렷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행안부 의뢰를 받아 진행한 '지방재정 신속집행 효과성 분석'(2017) 연구에 따르면 신속집행은 불용액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재정확대 효과를 불러와 실질 GDP 증가에 기여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질 GDP 증가는 신속집행 자체의 효과가 아니라 불용액 감소의 영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세연구원은 “과도한 신속집행은 재정 비효율성을 초래하기 때문에 상반기에 재정 집행을 집중하는 것보다 연간 총량을 관리해 불용액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재정 조기집행 제도의 현황과 개선과제'(2022) 연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0년까지 19개 연도를 분석한 결과 11개 연도가 ’상저하고‘가 아닌 ’상고하저‘의 경제성장 양상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상저하고는 신속집행 추진의 가장 큰 배경인데 실제로는 정부 전망과 전혀 달랐다는 얘기다. 예산정책처는 “상저하고-상고하저의 일관된 추세가 없는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쳐 신속집행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제도 이행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는 면에서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연구원이 진행한 '지방재정 신속집행이 지역경제 및 재정운용에 미치는 효과'(2023) 연구에 따르면 신속집행률이 1% 증가하면 시ㆍ군의 추가경정예산이 0.27% 증가하고 이자수입은 0.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인당 GRDP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불용률 감소는 시 지역에서만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연구원은 “신속집행 제도가 재정운용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미미한 반면, 추가경정예산 확대로 인해 재정운용 비효율을 야기하고 이자수입을 감소시키는 등 부정적인 효과가 다소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결론 맺었다.
부작용 크지만 사활 거는 지자체…신속집행 제도 전면적 손질 필요
이렇게 부작용이 큰데도 불구하고 지자체 입장에서는 신속집행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신속집행 실적을 평가해 약 300억원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재정 압박에 허덕이는 지방정부로서는 이 인센티브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신속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예산임에도 본예산에 반영하지 않고 추가경정예산에 포함시키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신속집행 관련, 같은 금액을 집행하더라도 본예산 규모(분모)가 작으면 신속집행률이 올라가는 계산상의 허점을 이용한 방식이다. 이 외에도 부서 간 경쟁을 시키거나 주 단위로 보고를 받고, 실적이 미비할 경우 대책을 세우게 하는 등 지자체 간 경쟁 과정에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선 공무원들은 효과가 없는 정책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긴다는 입장이다.
용혜인 의원은 “행안부가 편법에 가까운 방법을 권장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특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공무원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센티브를 무기로 지자체 간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신속집행 제도 폐지를 검토하고 불용액을 실질적으로 낮추기 위한 총량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동아경제신문 & dae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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