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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출생신고제 없이 익명출산제 도입땐 현장 혼란

[인터뷰]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이은실 기자 | 기사입력 2023/09/21 [15:27]

보편적 출생신고제 없이 익명출산제 도입땐 현장 혼란

[인터뷰]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이은실 기자 | 입력 : 2023/09/21 [15:27]

 

본문이미지

▲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동아경제신문

익명출산 선택 여성에만 제한적 지원

사각지대 외국인 여성 아동포기 우려

 

미혼부·혼외자녀,국내출생 외국인아동

출생통보제 사각지대…'미등록' 지속

정부 외국인아동 본국 신고 입장 고수

난민 경우 본국에 출생신고 불가능

 

국내 아동·이주민 지원·미혼모 단체

2015년부터 보편적 출생신고 연대활동

한국서 태어난 모든아동 등록 보장해야

 

[동아경제신문=이은실 기자] "출생통보제 도입 이후에도 미혼부 또는 혼외 자녀의 출생신고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본국에 출생신고할 수 없는 외국인 아동도 출생신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20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개최된 '출생통보제 이후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외국인 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누락없는 출생등록을 위한 입법 및 정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23년 6월,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 후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에서 태어난 아동 중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동이 6000여명 존재한다는 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정부는 뒤늦게 이 중 '출생신고 의무가 있는' 아동 2236명의 집중 조사를 진행했고, 경찰의 추가 조사 끝에 이 중 601명이 베이비박스 등에 유기, 249명의 아동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2023년 6월 30일, 의료기관이 태어난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에 알리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을 규정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이하 '가족관계등록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가 보도된 지 1주일 만이자 2022년 3월, 이 법안이 21대 국회에 발의된지 1년 3개월 만의 일이었다. 

 

한국은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이하 '아동권리협약')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하 '자유권규약')을 비준한 당사국으로, 협약에 규정된 대로 아동의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이름을 가질'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으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은 출생등록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해왔다.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한국의 출생신고 제도에서 신고의무자는 부와 모로 돼 있는데 부모가 신고하지 않을 경우 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문제와 함께 외국인 아동은 사실상 한국에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공존하고 있었다"며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국내 아동 단체들과 이주민 지원 단체, 미혼모 지원 단체 등은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을 위해 2015년부터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 라는 이름으로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는 아동이 출생한 의료기관에서 출생 사실을 국가에 통보하고, 이후 신고의무자가 출생신고를 하도록 해 출생신고에서 누락되는 아동이 발생할 경우 국가가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출생통보제'의 도입, 그리고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을 보완해 외국인 아동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정부에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해 왔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의 제안으로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이 발의된 지 8년만에, 수 천명의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동이 존재한다는 통계가 확인된 후에야 비로소 출생통보제가 법제화됐다. 

 

제도의 도입으로 이제는 부모가 출생신고하기 전에도 국가가 아동의 존재를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진 변호사는 "출생통보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한국이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한다고 할 수 없다"며 "결혼한 여성이 출산한 경우 여성의 법률상 배우자가 아동의 친부로 추정되는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으로 인해 한국에서 미혼부의 출생신고 또는 혼외 자녀의 출생신고는 여전히 어렵다"고 강조했다. 

 

2015년 '사랑이법'의 입법에 이어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폭넓게 인정한 2020년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입법의 미비로 인해 이러한 출생신고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거나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밖에서 태어난 아동의 출생신고는 서류 구비의 어려움으로 지연되기 쉽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현행 제도가 '국민'의 출생신고만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며 "한국의 출생신고제도를 관장하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이 적용 대상을 국민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동 중 4000여 명의 이주아동은 정부의 조사에서도 제외됐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행사하는데 큰 제약이 있다.

 

정부는 외국인 아동들은 본국에 출생을 신고하면 된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에는 본국에 출생신고할 수 없는 아동도 있는데 난민, 인도적체류자 및 난민신청자는 박해의 주체인 본국 정부의 기관인 공관에 방문해 자녀의 출생을 신고하기 어렵다. 

 

김 변호사는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국가도 있으며, 한국에 재외공관이 없는 국가도 50개국이 넘어 본국에 출생신고할 수 없는 이러한 아동은 한국에도 출생을 신고하지 못해 사실상 무국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아동들은 외국인 등록 역시 어렵다"며 "외국인 아동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생한 날부터 90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데, 출생을 등록하지 못한 아동은 기한 내에 출생을 신고하지 못한 사정을 소명해야 제한적으로 체류를 허가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 사실상 출입국의 재량에 따라 진행되므로 아동의 보호자는 자녀의 출생 등록 뿐 아니라 외국인 등록도 하지 못한 채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한국에서 체류자격이 없는 아동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건강권,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을 받으며, 성장 과정에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진학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출생통보제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익명출산제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한국 정부의 제5-6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후 발표한 최종견해에서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지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를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모든 아동이 출생 직후 등록될 수 있도록 미혼부가 그들의 자녀를 등록하는 절차를 간소화할 것', 그리고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할 것'을 권고하며,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하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를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이라면 국적, 체류자격, 부모의 혼인 여부 및 법적 지위 등과 무관하게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수 있도록 모든 절차를 마련하고, 아동이 원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제도적 조치를 완비한 후에도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익명출산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 현재, 한국에는 20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4.3%에 해당하는 수치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며, 외국인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국내 출생 외국인 아동의 수 역시 함께 증가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출생신고가 가능한 아동이 아닌 외국인 아동, 혼외 자녀 등의 많은 아동이 모두 병원에서 태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아동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마련 없이 익명출산제가 도입된다면 현장에서는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발의돼 논의되고 있는 익명출산과 관련된 법안들이 출생신고가 어려운 아동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가적인 논의도 없이 대상을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또는 '그 자녀'로 규정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한국에서 출산하는 대다수의 외국인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어떠한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런데 익명출산을 선택한 여성에게만 제한적으로 지원이 이뤄진다면,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여성에게는 아동을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출생신고는 아동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시작점"이라며 "법과 제도가 아동의 다양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아동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그 권리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출생 미등록 아동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기 때문에 해외로 출국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으로는 통장도, 핸드폰도 개설할 수 없다"며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심지어 생을 마친 후 사망신고도 할 수 없어 그야말로 '있지만 없는' 존재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외국인 아동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기 때문에 여권을 만들 수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며 "출생통보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외국인 아동은 여전히 출생신고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에 대한 법안이 두 건 발의돼 있다. 미혼부 및 혼인 외 출생한 아동의 출생등록에 대한 법안도 있다. 하지만 출생 미등록 아동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이 시점에도 이들 법안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아동의 권리를 고려한 방식으로, 외국인 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누락없는 출생등록을 위한 입법 및 정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시점"이라며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는 2024년까지 출생신고 제도의 본질을 해치는 '익명출산제'의 도입이 아닌,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마련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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